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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울림

그 시절 사람들은 왜 서로의 집 문을 스스럼없이 열었을까?!

by chatstar

그 시절에는 이웃집 문을 여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밥 한 끼를 나누고 안부를 묻던 사람들. 우리는 그때 무엇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상할 만큼 가까웠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집에 들어오고, 어머니는 이웃집에 가면서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잊곤 했습니다.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는 일이 특별한 초대나 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골목에서 놀다 배가 고프면 친구 집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었고, 해가 질 무렵이면 어느 집에서든 저녁 준비하는 냄새가 골목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왜 서로의 집 문을 그렇게 쉽게 열었을까요.

<img src=”old-neighborhood-memory.jpg” alt=”어린 시절 골목에서 이웃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따뜻한 옛날 풍경”>

1. 문을 여는 것은 마음을 여는 일이었습니다

그때의 집 문은 지금과 조금 달랐습니다.

문은 가족을 보호하는 경계이면서도 이웃을 막아 세우는 벽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찾아오면 반갑게 맞았고,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밥은 먹었어?”

<img src=”shared-meal-memory.jpg” alt=”소박한 집밥을 이웃과 함께 나누던 따뜻한 옛날 식사 풍경”>

그 짧은 한마디가 인사의 전부였습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가진 사람인지 따지는 것보다 오늘 밥은 먹었는지가 더 중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밥 한 끼가 사람을 이어주었습니다

누군가 찾아왔는데 마침 밥을 먹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숟가락 하나를 더 놓았습니다.

“같이 먹고 가.”

그 말에는 계산이 없었습니다.

반찬이 넉넉하지 않아도 함께 먹었고, 국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의 사람들은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나누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웃의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골목에서 뛰놀던 아이가 잘못을 하면 자기 부모뿐 아니라 이웃 어른에게도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안 돼.”

그 말은 간섭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이를 함께 돌본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완전히 구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골목은 작은 공동체가 되었고, 아이들은 여러 어른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랐습니다.

2. 서로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서로의 형편을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네 집에 아픈 사람이 있는지, 어느 집에 새 식구가 태어났는지, 누가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았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웃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말없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힘든 날에는 먼저 찾아갔습니다

누군가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이웃들이 찾아왔습니다.

반찬을 조금 가져다주기도 하고, 집안일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움이 더욱 중요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서로의 삶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날도 함께 기뻐했습니다

아이의 생일이나 집안의 경사가 있으면 이웃에게 떡을 돌렸습니다.

누군가 좋은 일이 생겼다는 소식은 한 집의 일이 아니라 골목 전체의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작은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살아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3. 지금 우리는 왜 문을 닫고 살아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생활은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전화 한 통이면 안부를 물을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리해진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진 것 같습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img src=”closed-door-modern-life.jpg” alt=”현대 아파트에서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며 이웃과의 거리를 생각하는 모습”>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전부일 때가 많습니다.

문은 닫혔지만 마음까지 닫힌 것은 아닐까요

물론 지금의 생활에는 사생활과 개인의 공간이 중요합니다.

예전처럼 무조건 서로의 삶에 관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을 닫고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놓친 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집의 문을 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을 조금만 열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4. 그 시절의 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어쩌면 그 시절 사람들이 서로의 집 문을 스스럼없이 열었던 이유는 집이 가까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가까웠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난하고 불편한 것이 많았지만,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았습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함께 웃었고, 울음소리가 들리면 무슨 일인지 걱정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조금씩 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훨씬 넓은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오래된 집이나 골목이나 낡은 풍경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요.

마무리

그 시절의 집 문은 자주 열렸습니다.

친구가 들어왔고, 이웃이 들어왔고, 때로는 특별한 용건도 없는 사람이 찾아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집의 문은 더욱 단단해졌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단단히 닫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보는 것.

오랜 친구에게 전화 한 통을 걸어보는 것.

옆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문을 다시 여는 작은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서로의 집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문을 통해 서로의 마음까지 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